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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

by 건강하게 돈 벌고 행복하자 2023.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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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빅뱅의 GD가 신었던 신발이 바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중에서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라는 신발입니다. 지금은 가격대에 많이 올라서 제대로 사서 신기도 어렵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이 GD가 신었던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한 종류인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입니다.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 컨버스 미하라 야스히로 블레이키

지드래곤이 신은 미하라가 몇개월전까지만해도 80~90선이 마지노선이였는데 이제 더이상 새상품 매물이 구하기 힘들고해서 100이상 된거임.. 중요한 건 중창에 엣지로 컬러 들어간 모델들은 다 갈라짐 심하다는 실사용자의 구매후기가 있더군요. 사이즈는 넉넉한 편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신발 브랜드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의 한 스니커즈 가격이 올해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4배나 치솟았습니다.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빅뱅의 지드래곤(GD·권지용)이 신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작년 7월에 GD가 샤넬 패션쇼와 일상에서 신고 다니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시장에서 재조명됐습니다. 실제 작년 말까지는 30만~40만원에 거래됐지만 GD 스니커즈로 입소문이 나면서 최고가 159만9000원에 거래됐. 리셀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이커머스와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도 미하라 야스히로 제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더불어 다른 색상의 스니커즈 가격까지 동반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미하라 야스히로

도쿄 타마미술대학을 졸업한 미하라 야스히로는 1997년 슈즈 컬렉션을 시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하였습니다. 이후, 스포츠 브랜드 푸마와 장기간에 걸쳐 성공적인 협업을 진행한 그는 남성복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기존에 선보이던 이색적인 슈즈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이 녹아든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미국 특유의 스타일과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에서 받은 영향을 컬렉션으로 표현하는 미하라 야스히로는 착시 기법으로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스타일을 선보이고 절제된 모노크롬 톤과 의도적으로 찢어낸 패브릭 구조로 연출한 해체적인 실루엣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한다고 합니다.

메종 미하라 야스히로의 미하라 야스히로 프로필

  • 미하라 야스히로 (미하라 야스히로) 1972 년 나가사키 출생. 타마 미술 대학 재학 중에 독학으로 신발을 만들어 시작해 1996 년에 "Maison MIHARA YASUHIRO "의 전신 인 "archidoom '를 시작한다. 1998 년에 첫 직영점 "SOSU MIHARAYASUHIRO"를 아오야마에 오픈 해, 다음 99 년에 유한 회사 SOSU를 설립. 2010 년 플래그십 스토어를 OMOTESANDO HILLS로 이전시켜 "Maison MIHARA YASUHIRO '로 오픈.
  • 당시 스무 살의 나는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그냥 현지 후쿠오카에서 살고 갈까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나에게 "도쿄의 에너지를 제대로 못 받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부모님이 미술입시를 밀어준 덕분에 도쿄의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그래서 1993년경에 타마 미술 대학에 합격하여 도쿄로 올라왔다고 한다. 엄마는 유화를 전공한 예술가라고 한다.
  • 신발 디자이너 길을 선택한 이유는 어릴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과 관련되면서 살아오면서 "예술과 사람을 조화시키고 싶다"는 사명감이 어느새 생겨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까지는 아니지만, 미술관의 그림에 손을 대게 하려고 하면 문제가 되곤 했는데 이런게 전혀 즐겁지 않은 예술적 교감이었다고 한다. 당시 "왜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나열해 놓은 거야?"라는 느낌이 미하라 야스히로 내면 어디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학부를 지망한 이유도 예술 숭배는 전혀 없고, 그런 예술품에 손을 못 뻗는 체제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22살 때 '입을 수 있는 예술’을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신발’었다고 한다.
  • 그 학생 시절부터 하라주쿠에서 활약하는 많은 분들에게 제 신발을 보여주면서, 이 거리에서 브랜드를 발매했습니다. 사실 “MIHARA YASUHIRO” 브랜드도 현재 유나이티드 어로우즈의 고문인 구리노 히로후미씨에게 "세계에서 겨루고 싶다면, 일본인답게 성으로 자신을 드러내라"고 조언받아서 정해진 거라고 한다.
저로서는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사실 없습니다. 예술가 마르셀 뒤샹처럼 산 변기를 거꾸로 놓고 예술이라고 우기면 되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도록 문제 제기가 중요한 예술이나 패션 하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 생각이니까, 제가 만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웃음). "내 신발 디자인에 대해서 어떤 개념입니까?"라고 물어보면 답변을 하지 않는 것만 그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별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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